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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OU housekeeper

못 먹어도, 고!

Life is good!


할머니가 마당에서 김장하는 동안, 김진혁은 살뜰히 고치고 꾸민 자기 공간을 소개했다. 직접 담근 매실주를 자랑하고, 좋아하는 원두로 커피를 내리며, 제작한 티셔츠를 보여주고, 자기 로고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 그의 반짝이는 두 눈은 말한다, 지루한 건 정말, 정말로 싫다고. 그동안 정성을 다해 살아낸 것처럼 앞으로도 어쨌든 이번 생을 재미있게 꾸려갈 거라고.


김진혁, 요리사 @hayden_kook






 





방 이곳저곳에 같은 로고가 보이네요.

제가 만든 로고에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겼어요. 어떻게 보면 매일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잖아요. 지루해하지 않으려면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귀여운 얼굴의 눈과 코는 나누기 기호를 세워둔 것이에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감정, 정보를 의미해요. 코끝에 엑스 자는 곱하기 기호로도 볼 수 있어요. 뭔가를 나눈 결과가 배가 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스마일과 머리의 하트는 기쁨과 사랑을 담은 거고, 동그란 얼굴은 제가 만들고 싶은 동그란 세상을 뜻해요.

촬영 중에 언뜻 ‘상경’ 이란 표현을 들었어요. 어디에서 올라왔어요?

고향은 대전이에요. 스무 살까지 쭉 살았어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다음에는 서울에서 지내고 있어요.






요리하고 있죠?

네. 서울숲에 있는 ‘카니보’라는 와인바에서 일해요.


요리한 지 얼마나 됐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3월부터 했어요. 8개월 정도 되었네요. 요리를 시작한 얘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얼마든지 올라가서 얘기해주세요.

원래는 집에서 혼자 해 먹고, 가족들과 나눠 먹는 게 다였어요. 그러다 집에서 밥에 반찬만 먹는 게 지루해져 버린 거에요. 다양하게 요리하는 걸 배우고 싶었어요. 재료를 튀겨보고 싶기도 하고, 파스타도 만들어 보고 싶고, 프랑스 요리가 왜 유명한지 알고 싶었어요. 어떻게 튀기면 돈가스가 일식이 되고 어떻게 튀기면 독일 음식이 되는지도 궁금했고요.


요리를 위해 상경했나요?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틈틈이 조리 자격증도 따고 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요리를 배웠어요. 대회나 행사가 거의 서울에서 열리니까 그때 자주 서울에 왔어요.

금요일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토요일 첫차를 타고 새벽 네 시반쯤 올라오곤 했어요. 지금 이 집이 원래 할머니 댁이거든요. 주말이면 여기서 그렇게 신세를 지기 시작했어요. 옥탑에서 삼촌이랑 같이 자기도 하고,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안방에서 주무시면 거실 냉장고 앞에서 쪼그려 자기도 했어요. 주중엔 학교에 가고 주말엔 서울에 올라와 지내길 반복했었죠. 그러다 대전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요. 관심사 그대로 요리를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고등학교 때 이미 배웠던 것들인 거에요. 지루했어요. 학교 동아리에 들어가서 회장도 해봤지만, 성에 안 차더라고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고여 있는 것 같아 답답했어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더 도전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어요. 새벽에 이자카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11월쯤이니까 종강 무렵이었는데, 낮에 수업 듣고 저녁에 실습을 마치고 나면 이자카야에 가서 일하고 새벽에 퇴근하고 다시 낮에 수업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했나 싶은데 그때 새로운 목표가 생겼었거든요.


오, 그게 뭐예요?

당시에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도와주시던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가, 호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당연해지는 하루도, 머뭇거리는 마음도 전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때 성수 스타우트에서 그린 올리브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다짐을 기억하려고 팔에 올리브를 타투로 새겼어요.

그렇게 이자카야에서 두 달 바짝 일하며 모은 돈에 아끼던 패딩을 팔아서 200만 원을 만들었어요. 영어도 못 하고, 가진 지식도 없는 채로 그 돈을 그대로 환전해서 호주에 갔어요.


호주에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멜버른의 브런치 카페에서 일했어요. 거기서 중국인 투자자를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아 가게를 오픈해보자고 얘기가 되었어요. 페인트칠부터 가게 오픈까지 만들어냈어요. 세컨드 비자가 필요해서 육가공 공장에 들어갔어요. 농장에 가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그땐 개고생해보고 싶었어요. 88일을 버티면 되는 건데, 오십몇 일 채우고 한국으로 도망 왔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정말 ‘개고생’이었나요?

일단 체격에 한계가 있었어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체형이 저랑 아예 달라요. 덩치 큰 백인들이 대부분이에요. 소는 집채만하고, 톱은 거대하고. 제가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심리적인 것도 컸어요. 제가 맡은 보직에서는 매일 소의 심장, 쓸개, 간을 봐야 했어요. 식용으로 쓸 수 있는지 점검하는 일을 했어요. 간에 있는 쓸개즙을 제거하고, 심장은 잘라서 성분을 확인해서 넘기는 일을 반복했죠.






지쳐서 돌아왔겠어요.

네. 한국에 왔더니 수중에 꽤 많은 돈이 있는 거예요. 힘든 일을 한데다 기본 시급이나 환율을 치니까 한동안 놀아도 되겠더라고요. 두 달을 아주 진하게 놀았어요. 서울은 돈 있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잖아요. 행복했어요.

돈이 떨어지니까 대전으로 돌아가 복학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호주에서 생활을 돌아보며 누워있는데, 브런치를 만들고 커피를 배우는 게 아니라 김치를 만들었다면 그게 더 멋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의 것을 쫓기 바빠 한국인으로서 한국 음식을 할 생각을 못 한 것 같더라고요. 한국을 중심으로 한 고급 음식을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어요. 다시 외국에 나갈 생각을 접고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파인 다이닝’을 떠올렸어요.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에 청담동 정식당에 취업했어요. 거기서 거의 1년을 보냈어요. 11개월을 보내고 퇴사를 했는데, 그 무렵 또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뭐가 보였나요?

아침에 보송하게 출근해서 땀에 절어 퇴근하는 모습을 반복하는 제 자신이 마치 기계 같았어요. 지치더라고요. 왜 이렇게 일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답을 못하는 거에요.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쇼핑몰에서 잠깐 피팅 모델 일을 했어요. 사무실에 있는 미싱을 활용해서 헌 옷으로 가방도 만들면서 시간을 즐겨봤어요.






여전히 복학은 안한 것 같네요.

휴학생 신분이에요. 앞으로도 복학을 할 것 같진 않지만요. 올해 초에만 해도 중국으로 갈 계획이었어요. 호주에서 만났던 투자자가 상하이에 새로운 와인바를 오픈할 계획이라고 같이 하자며 제안을 했거든요. 벽에 보면 그때 받은 중국 비자가 걸려 있어요.


아, 정말이네요(웃음).

여권도 아직 중국 대사관에 있어요. 찾으러 못 갔거든요. 출국 일주일 전이라 짐을 싸던 중에 코로나가 터진 거죠. 그리고 다 공중에 붕 떴고요. 최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중국에 갈 생각으로 또 휴학 신청을 했는데,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일단은 다시 일을 시작한 게 지금의 와인바에요. 여기도 11월이면 퇴사해요. 애초에 직장을 구할 때부터 얘기가 된 상황이었어요.


11월에 다른 계획이 있나 봐요?

친구랑 둘이 미국 횡단을 하려고 했어요. 차 빌려서 캐나다까지 세 달 동안.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죠. 하지만 예정대로 퇴사하고 앞으로 방향성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서울숲 근처에서 종종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것 같던데, 요리가 매번 다르더라고요. 집을 언뜻 보니 요리가 아닌 아예 새로운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는 것 같고.

올해 그런 행사가 많았어요.


어떤 요리를 가지고 나갔어요?

부뎅 누아라고 프랑스식 소시지 같은 게 있어요. 한번은 그걸 제 스타일로 해석해 팔았어요. 밥, 젓갈, 방앗간에서 짜 온 들기름이랑 김을 재료로 소시지처럼 만들었어요. 짜먹는 밥 같은 거죠. 김밥 포장을 생각해보면 알루미늄 호일에 김밥을 싸고, 비닐봉지에 단무지를 싼 다음 그걸 검정 비닐봉지에 다시 담아주잖아요. 이 요리는 포장지가 딱 하나니까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요.


기발해요. 만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바오 프로젝트요. 찐빵이랑 비슷한 음식인 바오에 속 재료로 족발을 써봤어요. 직접 삶은 족발을 빵에 끼워 파는 거예요. 또 다른 종류로 콘 샐러드가 있었어요. 마요네즈에 비빈 옥수수 샐러드를 빵에 가득 채운 다음 토치로 옥수수를 그을려 만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캐러멜라이징한 아몬드와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바오.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한 플리마켓도 있었어요. 메뉴판도 매번 직접 디자인해요. 그런 거 진짜 재밌어요.


벌여놓은 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해요. 그동안 진혁님이 벌여 온 일은 왠지 진혁님을 꼭 닮은 것 같아요. 요리가 아닌 일도 벌이고 있죠?

아, 그러고 보니 벌이고 있는 게 또 있네요. 독일에서 공부하는 분인데 3분짜리 컨셉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같이 작업 중이에요. 작가님이 스킨헤드를 선호해서 머리를 이렇게 밀었어요. 작품은 올해 말쯤 나올 예정이에요. 11월에는 서울숲 모멘토 커피 앞에서 일요일마다 친구랑 핫도그를 팔 생각이에요. 조금 추워도 또 신나서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그게 올해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까요?

매거진을 기획하고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친구가 친구를 소개해주는 컨셉이에요. 내 주변 사람을 소개하면서, 사실 네 주변에도 이런 멋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더 가까이하고, 사랑하자는 맥락이에요. 돌아보니 매번 정말 재밌었어요. 지금 이 인터뷰도 나중에 엄청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 날 궁금해하는 게 절대 당연하지 않은 일이잖아요. 제 이미지만 보고 쟤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저 집 가보고 싶지 않아? 생각하고 진짜로 찾아온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근데 정말 궁금해요. 무염 캐시미어 브랜드가 저랑 어떤 접점을 발견했기에 나한테 연락했을까?


인터뷰를 진행한 다른 팀과는 다르게 이 집이 가장 미지의 세계였어요. OU의 브랜드 이미지랑 대놓고 닮은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보다 오히려 혼자 살아내는 진혁님의 삶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혼자 산다, 살아낸다,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네요.


OU의 디자이너가 캐시미어 브랜드를 통해서 하고 싶던 이야기는 친환경, 고급스러움 같은 것도 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캐시미어를 접하게 하고 싶다’가 제일 커요. 오래 캐시미어 제품을 만들면서 이 좋은 소재를 젊은 사람들은 비싸다는 이유로 못 쓰고 있다는 게 아쉬웠어요. 캐시미어 100%를 10만 원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그저 고상하지만은 않은 제품을 고민한 거예요. 캐시미어와 활동성, 캐시미어와 20대 남성, 이렇게 이질적인 게 부딪혀서 좋은 걸 만드는 게 재밌어요.

저도 그런 컬레버래이션에 완전 찬성이에요. 고정관념을 깨는 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남들이 ‘왜 이렇게 해?’ 하는 걸 해야 성공하는 거예요. 그때가 가장 재밌기도 하고요. ‘빡빡머리에 타투도 많은 사람이 캐시미어 브랜드 인터뷰를 해?’라 느끼는 고객도 있겠지만, ‘캐시미어랑 저런 친구도 어울리네’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OU가 주변에 이런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런 작업은 제가 하려는 매거진과도 비슷한 맥락이네요.





끼가 흘러넘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예요(웃음). 그게 불안할 때는 없나요? 미래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예전보단 덜 불안해요.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뭘 느끼는 사람이며, 어디쯤 와 있는지 계속 실험하고 확인해나가고 있으니까요. 전에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인 것 같은데, 이 우물이 사실은 공사장에 널린 파이프만 한 작은 지름인지, 아니면 꽤 큰 구덩인지 감도 안 잡혔거든요. 앞으로도 그렇게 알아갈 거니까 엄청 두렵진 않아요.


벽에 마이크가 걸려있네요?

잘 봤어요. 아직까진 그냥 취미긴 한데 레코딩을 하고 있어요.


지금 사는 이 집이 할머니 댁이라고 했잖아요. 별로 간섭이 없나 봐요.

처음엔 벽을 이렇게 칠하는 것도 어려워하셨어요. ‘내 집을 왜, 뭐가 잘못돼서 자꾸 고쳐? 택배는 왜 자꾸 와?’ 처럼 상황이 변하는 것에 대해 매번 솔직하게 답변해드렸어요. 이런 게 필요해서, 뭐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로 이해하시는 것 같진 않아요. 그래도 매번 질문하고, 전 성실히 답변하죠.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누수가 심했어요. 벽지를 다 벗기고 시멘트 칠을 하고 다시 도배했죠. 어떻게 보면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자가 보수와 인테리어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해요. 하지만 가끔 술 마시고 시끄럽게 하거나 노래를 크게 틀면 뿔이 나세요.


뿔이 나도 행복할걸요. 손자가 이렇게 신나게 아래층에 살고 있으니까요.

정말 그러실까요? 그 여부는 나중에 따로 물어볼게요(웃음).









밥은 집에서 안 먹어요?

네. 가스가 안 나와서 요리를 전혀 할 수가 없어요. 부엌에 가스레인지나 조리 공간이 없고 딱 싱크대만 있거든요.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커피랑 술만 먹어요.


할머니랑 먹진 않아요?

가끔 아침 식사해요. 전날 미리 ‘내일 삼계탕 할 건데 먹으러 올 거지?’ 물어보면 ‘몇 시에 갈까요?’ 되물어요. ‘아침에, 8시까지 와!’라 하면 너무 이르지만 가서 먹어요. 제 퇴근 시간이 밤 11시라서 아침 8시면 눈을 겨우 뜰 시간이에요. 그래도 올라가서 아침 먹고 운동 갔다가 커피 마시고 낮잠 자면 출근하기에 루틴이 딱 맞아요.

평소엔 공복이 편하게 느껴져서 출근 전까지 커피 말고는 별로 안 먹어요. 일어나서 컴퓨터로 뭐 좀 하다가 커피 내려 마시고 출근하는 식으로 하루를 꾸려요.


그럼 배 안 고파요?

대신 출근해서 공짜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죠. 주방에는 셰프님과 저, 단둘이라 간단히 오픈 준비를 해놓고 밥을 먹어요.


먹고, 살고, 입는 것 중에 어디에 돈이 가장 많이 드나요? 식인가요?

네. 단연 ‘식’. 제가 진짜 위가 크거든요. 한 번에 엄청 많이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외식도 많이 해요. 이 업계 사람들한테는 밖에서 사 먹어 보는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돼요. 하루에도 몇 개씩 프렌차이즈가 생기고, 누군가는 계속 도전을 하고, 트렌드가 바뀌니까요. 30만 원 짜리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허름한 노포를 찾는 것도 모두 좋아해요. 사람 냄새가 스민 음식을 찾으면 기분이 좋아요. 조용하고 천천히 입소문이 난 오래된 가게에 앉으면 또 술이 빠질 수 없죠. 멸치회 이런 걸 서비스로 주시면 술을 어떻게 안 시켜요? 감자전에 좋은 밤, 좋은 친구들이랑 보내고.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 때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네요(웃음). 술은 뭘 마셔요?

맥주 파에요. 볶음 안주가 있으면 소맥 정도.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딱 한 가지만 얘기해 준다면?

된장찌개요. 집된장과 청양고추가 포인트에요. 꼭 들어가야 해요. 다른 재료는 상황에 맞춰 애호박이나 고기, 양파, 두부 같은 걸 넣고, 간은 고추장이랑 젓갈로 맞춰요.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면 된장찌개를 정성껏 만들어 낼 것 같아요.






특히 좋아하는 재료가 있나요?

특히 좋아하는 맛은 있어요. 신맛이요. 얼마나 좋아하냐면 짬뽕에도 식초를 넣어 먹고, 쌀국수집에서는 라임 주스를 거의 부어 마셔요. 냉장고에는 레몬이 항상 있어요. 사람들은 아침에 보통 녹차나 홍차를 마시잖아요. 저는 칼라만시 원액을 두고 뜨거운 물에 풀어 마셔요. 서울숲에 모멘토 브루어스만 가는 이유도 산미 때문이에요. 아주 맛있는 산미를 내거든요. 커피를 내리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모멘토에서는 호주 방식의 커피를 따라요. 커피를 뜸 들일 때 작은 스푼으로 저어 원두의 향이 더 잘 스며들게 해요. 아, 플리마켓에서 바오를 팔 때 하이볼을 팔았었는데, 그때도 칼라만시를 사용했어요. 레몬이나 라임은 지겨우니까요.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도 궁금해요. 아까 언뜻 휴대전화 얘기하면서 ‘새것은 별로여서’라고 했잖아요. 옷은 어때요?

옷도 빈티지 좋아해요(웃음). 지금 입고 있는 이 바지는 3년 전에 동묘에서 산 거예요. 셔츠는 엊그제 건대에 새로 생긴 빈티지 샵에서 건졌어요. 친구에게 작아져서 저에게 온 폴로 니트는 제가 입기에도 작아서 재봉틀로 가방을 만들어서 쓰고 있어요.


옷을 살 때 브랜드를 보고 구매해요?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브랜드가 있는 게 많아요. 유난히 어떤 아이템을 잘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그런 땐 비싸더라도 사요. 예를 들면 헤드셋 같은 건 보스(Bose)를 사는 것처럼요. 질기고 단단한 워크웨어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제품을 주로 사는 것 같네요. 티셔츠 같은 건 만들어 입기도 해요.


손가락으로 ‘HAPPY’를 표현해 티셔츠에 새겼네요.

네. 행복은 누구랑 어떤 시간을 가지는가에 관련이 있잖아요. 그게 진짜 쉽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손으로 알파벳을 만들었어요. 그냥 내 손가락으로 그려도 그게 바로 행복이야! 행복은 진짜 가까이 있어요. 그 생각만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어요. 저의 이런 생각이 담긴 티셔츠인데 꽤 많이 팔렸어요. 40장 정도.






집에 여기저기 붙은 글씨들은 뭐에요? 신발장 앞에 쪽지도 인상적이었어요. ‘진혁아, 반복되는 일상을 탓하지 말아라.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은 없고, 충분히 값지고 살아볼 만한 하루다. 다 너 하기에 달려 있다. 오늘도 당차게 행복을 공유하자.’ 누가 써 준 편지인가요?

제가요. 제가 보고 기억하려고 써둔 거예요. 생각으로만 남지 않도록, 또 생각 없이 무심코 하루를 지나치지 않도록 노력해요.






어두운색으로 칠한 이 방 말고도 곳곳에 진혁님 손이 간 게 느껴져요. 애착이 가는 공간이 있나요?

지금 앉아 있는 소파요.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요(웃음).


인스타그램엔 커피 내리는 장소가 잘 올라오더라고요. ‘모멘토 브루어스’ 원두 카드가 빼곡히 붙어 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커피 내리는 일은 저에게 일종의 명상하는 시간이에요. 요즘같이 쌀쌀한 아침이면 하루의 시작에 몸이 움츠러 들어 있잖아요. 으슬으슬한 공기를 뚫고 부엌에 똑바로 서서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요. 저울로 무게를 재고, 손잡이를 돌리고, 콩이 갈리는 소리를 듣고, 주전자에 물이 받아지는 걸 느끼면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느껴요. 뜨겁게 데운 물로 커피를 내리면 향을 맡고 온기를 느껴요.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만지면서 천천히 아침을 시작하는 장소가 부엌이에요.

이 머그컵은 ‘모멘토 브루어스’ 사장님이 제 로고를 넣어서 따로 제작한 거예요. 생일에 선물로 주셨어요. 책상 위를 보면 제 로고가 들어간 목걸이가 있는데 이건 왁스 카빙에 빠진 친구가 만들어 줬어요. 뒷면에 ‘Life is good’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정말 맘에 들어요. 감동했어요. 로고가 들어간 조명도 선물 받았고요. 최근에 고마운 일이 정말 많았네요.






MBTI 성향 검사해 봤어요? E에요, I에요?

어떨 것 같아요(웃음)?


인스타그램으로는 당연히 E 같았는데 얘기해보니 헷갈려요.

외향형, E에요. 근데 퍼센티지가 49.5% 정도, 거의 반반이에요. 에너지가 주로 밖으로 향하는데, 코로나로 좀 바뀐 것 같아요.


코로나로 뭔가 바뀐 게 있다면?

엄청 많아요. 컴퓨터도 원래 없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최근에 샀어요. 두 달 전에요. 라이프스타일이 전체적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좋아졌어요?

좋아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죠. 그냥 달라졌어요. 전에도 재밌었지만 지금도 재밌어요.


집에 있으면 소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했어요. 뭘 하면서 앉아 있어요?

퇴근하고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데 가장 많이 할애하는 것 같아요. 음주 독서 진짜 좋아하거든요. 최근에는 독립서점을 잘 가요. 책장을 넘겨보다가 맘에 드는 문장이 눈에 띄면 사 와요. 소파에 앉아서 찬찬히 읽어요.


좋았던 책 하나만 공유해주세요.

작가 ‘가랑비메이커’ 책이요. 거의 다 접어놓고, 밑줄 칠했을 정도예요. 여러 번 읽어도 그때마다 훅하고 파고드는 게 있어요. 심장을 때린다고 해야 하나. 하나만 읽어드려도 되나요?







오, 좋아요.

제목, 하얀 도화지는 싫어요.

인생을 하얀 도화지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아요. 빼곡하게 채워진 그림 위에 다시 하얗게 색을 칠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런 선도 그어보지 못한 채 새하얀 종이로 남겨두는 건 인생에 대한 제 태도와는 먼 것 같아요. 비록 실패하고 망한 그림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간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요. 못생긴 점과 선들이 모여 마침내 그려낼 세상. 단 하나의 명작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그릴 거에요, 멈춤 없이. 크.


진혁님이 얘기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네요.

이런 이야기와 문장이 담긴 책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저에겐 이게 집밥인 것 같네요.




인터뷰와 글 | 조서형 에디터 필름 사진과 손글씨 | 김지욱 포토그래퍼




 




Super Life! Super Deli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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